“여성 억압 정권에 면죄부”… 러시아, 탈레반 첫 승인에 국제사회 경악

탈레반 귀환 140일… 20년 만에 돌아온 정권의 모습은? | 한국일보

EPA 연합뉴스

러시아 정부가 세계 최초로 탈레반 정권을 아프가니스탄의 공식 정부로 인정했다. 국제사회는 이 결정을 “여성 탄압과 인권유린 정권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내 여성 인사들은 “러시아가 여성의 자유를 저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일(현지시각) AFP통신 등 복수 외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지르노프 주아프가니스탄 러시아 대사는 이날 카불에서 탈레반 외교장관 아미르 칸 무타키와 회담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레이트(탈레반 정권)를 러시아 정부가 공식 인정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탈레반 측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고, 러시아 외교부는 “양국 간 무역·에너지 협력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성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경제적 명분도 이 결정의 윤리적 타당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2021년 재집권한 탈레반 정권은 여전히 여학생의 중등 교육을 금지하고, 여성의 직업 활동과 외출을 철저히 통제하며, 공개 태형과 억압적 샤리아 법 집행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왔다. 인권감시기구(HRW)는 이 같은 정권에 대한 인정은 “사실상 국제 인권 규범에 대한 노골적 위반”이라고 질타했다.

심지어 러시아는 지난 4월, 자국 내에서 테러단체로 지정했던 탈레반의 활동 금지 조치까지 해제하며 사실상 탈레반을 ‘합법적 파트너’로 간주했다. 이는 탈레반이 지난 수십 년간 자행해 온 폭력, 여성 억압, 테러 연루 행위에 눈을 감은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프간 전 국회의원이자 여성 인권운동가인 마리암 솔라이만킬은 “이 조처는 여성 교육을 금지하고 공개 태형을 시행하며, 유엔 제재 테러리스트들을 숨겨주는 정권을 정당화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녀는 “러시아는 그들의 침묵과 인정으로, 탈레반의 잔혹한 정치를 국제무대에 데뷔시켰다”고 직격했다.

러시아는 스스로를 ‘국제 질서의 균형자’라 자처해왔지만, 이번 결정은 그 본색을 드러낸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여성과 소수자, 언론의 자유가 유린되는 현장을 외면한 채 정권의 정당성만 부여하는 것은 과거 냉전 시대 독재 정권과의 야합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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